1. 믿음
정해진 생에 있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유다이의 삶이 그러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유다이는 눈을 감으며 깨닫는다. 기억을 가진 채로 한 달, 일 년, 십 년이 주어지더라도 유다이는 이번 생을 똑같이 살아갔으리라. 고통을 겪는 중인 유다이에게는 안타깝게도 명줄이 끝나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유다이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하는 것도, 꼼수부리지 않는 것도, 자신에게만 채찍질을 하는 것까지. 유다이는 이 모든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순리는 따르는 게 마땅한 도리인 것이라고. 그러나 갓 태어난 천사는 배움이 짧아 그런 것까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이런 능력 따위, 애초에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함께 온 동료들의 소식이 끊겼다. 모두 타의에 의해 끊어진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숙청 당하는 게 그 누구도 아닌 전장의 제일 앞에 섰던 자신이라니… 유다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유다이의 불길은 솜털 하나하나까지 번져갔다. 이제 전신을 감싼 불길은 하늘로 솟구쳤고, 유다이 역시도 중력애 맞서 발 아래 건물을 둔 채였다. 그의 마지막 결심이 점차 굳혀지고 있을 때, 시선에 병원 건물 옥상에서 경멸이나 혐오 말고 다른 종류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해도 유다이는 그 소년을 구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유다이가 원한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다이와 불길이 소년에게로 향했다. 자신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는 소년을, 유다이는 안아들고 날았다. 내 품이 뜨겁진 않아? 그 건물 곧 무너질 테니, 너라도 살았으면 해… 마지막까지 참… 나도 어쩌면 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네…… 수영은 할 수 있니? 소년은 대답 대신 유다이를 눈에 담았다. 그야 하늘을 나는 사람을 보는 건 누구나 처음일 테니, 유다이는 괘념치 않고 소년을 강 아래로 떨어뜨렸다. 유다이는 소년의 시선이 믿음이라고 믿고 싶었다. 믿음을 갈망했던 마음이 너무 커서, 소년을 믿을 수 없었을지도. 그래서 유다이는 마지막 희망을 자신 대신 그 소년에게 전부 걸었다.
“이젠 지겨워……”
총성과 함께 날아드는 실탄이 유다이의 불길에 녹아 비처럼 지면에 꽂힌다. 녹는 것도, 굳는 것도 단 한 순간. 유다이의 불길은 그랬다. 한 순간. 유다이의 삶도 마지막에서야 한 순간, 반짝일 수 있었다. 실탄과는 다른 종류의 엄청난 빛이 도시를 장악하고 유다이는 무너지는 고층 건물의 잔해들과 함께 불타올랐다. 끝이다. 이정도는 되어야 죽을 수 있구나. 탄이 정확히 가슴에 꽂힌 채로, 자신이 만든 불길과 가슴 속의 탄이 폭발하는 빛 속에서 유다이는 눈을 감았다.
정해진 생에 있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첫 번째 유다이의 삶은 그러했다.
인간계의 모든 감정을 깨우치기 위해 사건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천사는 인간에게 구원받는다. 죽음까지 경험하고 그 감정들을 모아 천계로 돌아가려 했는데. 그랬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도 천사는 꽤나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안아주는 그의 품이 뜨거워서, 그가 보여준 땅과 하늘이 아름다워서, 끊임 없이 주절거리던 목소리가 좋아서… 천사는 생과 사 사이에 있는, 새로운 감정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안녕. 살아 남아! 그 목소리를 끝으로 비록 바다에 빠뜨렸지만 천사는 금방 뭍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천사가 젖은 몸을 이끌고 나왔을 때는 이미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다시 보고 싶다. 천사가 한 발자국 내딛었을 때는 이미 저 멀리서 불빛이 번쩍였다. 또 보고 싶은데… 천사는 한 인간의 엔딩페이지를 목격하고야 만다.
아사쿠라 죠는 인간계에서 꼬박 스무살을 채우고나서야 천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사쿠라는 무라타가 건네주는 천계의 규율과 인수인계서를 받아들며 질문한다. 꼬박 일주일이나 생각해보아도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순간은 아사쿠라에게 너무 짧았다.
“무라타 상.”
“응? 종이도 안 펼쳐보고 벌써 질문이 있어?”
“아쉬움을 이겨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기하거나 눈을 감고 추억을 상상해야겠지.”
“추억을… 상상해요?”
“추억이라는 게 기억조각에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아……”
아사쿠라는 ‘아닐걸요… 그는 기억에서처럼 여전히 빛날 텐데요. 무라타 상이 안 보셔서 모르는 거예요…’ 하는 말대답을 꾸욱 삼킨 채 끄덕였다.
“네…”
“굳이 직접 봐야겠으면….. 환생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인간계에 다녀와야겠지?”
“인간계에 내려갈 명분은 많지 않으니깐 말야, 꽤 어렵겠어~”
“그렇지?”
인간계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천계에서 아사쿠라가 제일 먼저 맡은 일은 명부 관리였다. 찾아야 하는데. 혹여나 소멸이 되었을까. 아사쿠라는 소멸 예정 명부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그의 얼굴이 보일까 긴장에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하루치 할당량을 끝마치고 나면, 명부가 쌓인 창고에서 쭈그려 앉아 다시 그를 찾았다. 보고 싶다. 아사쿠라의 머리엔 그 생각 뿐, 그 다음은 없었다. 다시 보고 싶다. 생전의 이름조차 몰라서 명부를 펼쳐 얼굴을 기억 속의 얼굴과 매치해보아야 해서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무라타가 보기에 아사쿠라가 안쓰러웠는지 다른 천사들보다 일감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나서야 속도가 붙었다. 찾았다. 동글동글한 눈동자. 어딘가 슬퍼보였던 표정 입매. 기억 속의 그가 맞았다. 다행이게도 그의 명부가 폐기되기 전이었다. 자진을 결심한 인간이었터라 벌써 그의 명부에는 소멸 도장이 찍혀있었다. 여태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의 자진 때문이라니. 코가 유다이, 그의 명부는 폐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손 쓰지 않는다면 환생은 커녕 혼조차 남지 않을 거다. 누군가는 힘겹게 찾은 그의 명부를 들어 환생 카테고리에 끼워넣는다. 일전에 무라타에게 받았던 규율과 그의 얼굴이 아사쿠라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였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아사쿠라는 간절함을 담아서 그의 행복을 응원한다.
처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지~ 아사쿠라의 일탈은 금방 탄로났다. 환생한 사람의 숫자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원을 확인하던 시게타는 자신이 잘못할리 없다며 아사쿠라를 의심했는데, 그의 통찰력에 아사쿠라는 대답도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린 채였다. 무라타는 아사쿠라를 혼내던 시게타를 나무라며 아사쿠라의 처벌을 내렸다. 임시 인력이었다고 해도 아사쿠라의 부재가 싫었던 시게타가 또 다시 투덜거렸다. 무라타는 시게타의 중얼거림을 가볍게 흘려듣고는 아사쿠라를 배웅한다.
“아사쿠라, 무사히 제자리로 돌려놔야겠지?”
결연에 찬 아사쿠라가 끄덕인다. 아사쿠라의 생에 두 번째 인간계행이었다.
코가 상,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 있을까요?
“왜 보내준거야?”
“내가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줄거리거든. 재현되면 재밌을 거 같아서?”
“…허.”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아사쿠라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천사는 고통 속에서 피워나는 거거든.”
“이상해…”
“에~ 진짜인데? 시게타도 다 고통을 양분 삼아……”
“재미 없어…!”
그를 환생 시킨 것이 옳은 선택일까. 아사쿠라는 옳지 않았다하더라도 자신이 만족하는 선택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의 모습이 어떻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아사쿠라는 자신을 믿었고, 아주 잠깐 보았던 기억 속의 그 또한 믿었다.
2. 소망
코가 유다이는 자신에게 지금과는 다른 하나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난 후 깨달았다. 꿈 속이나 멍을 때릴 때 아주 자세한 기억이 떠오른다는 유다이의 고민에 마츠코는 전생이려나~ 하는 대답과 함께 유다이가 던진 대화 주제를 종결지었다. 그녀의 하루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디저트를 고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우짱, 커피 한 잔이면 돼? 응, 샷 추가로 부탁할게.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다이는 전생에 대해 검색해본다. 역시 말도 안 되는 거겠지? 나의 망상이려나… 꿈 속의 자신은 손에서 불이 나오기도 했으니 망상이라고 치부하는 게 더 합리적이긴 했다. 아니면 꿈은 정반대라는 설이 맞는 건가. 전날 오피스텔 가스화재 사고에서 물대포로 불을 끄고 왔던터라 유다이의 혼란은 더 가중되어갔다. 으으, 모르겠단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같은 걸… 핸드폰 화면만 보면서 걷다보니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던 유다이는 그대로 교복을 입은 소년과 부딪치고 만다. 죄송,
“어?”
시야에 들어온 소년의 모습에 불현듯 다시 기억이 떠오른다. 기억의 가장 끝 부분에 있던 소년. 소년을 통해 유다이는 그 꿈이 어쩌면 존재했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네. 맞습니다…”
질문한 적이 없는데 대답이 돌아왔다. 벙찐 표정의 유다이에 소년이 먼저 말을 붙여온다. 심지어 처음 보는데, 구면인 것처럼 유다이 자신을 기억한다니.
“코가 상,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
“역시 기억을 못하시겠지만…”
“당신… 뭔데?”
“기억해주신다니 다행이에요.”
“항상 고민했었거든요…”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기된 표정의 소년을 유다이는 애써 무시하고 지나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멈추어 뒤를 돌아보니 소년이 유다이에 어깨에 또 부딪혔다.
“너!”
“네…”
“언제까지 따라올건데?”
“여기서 멈춰야 하나요… 그럼 이제 가만히 서있겠습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어… 아름다우십니다.”
“에?”
뜬금 없는 말에 유다이가 다시금 벙찐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본다.
“…귀엽습니다.”
“뭐?”
“……멋집니다…?”
“뭐하는 거야, 너! 처음 보는 사람한테!”
“책에는 분명히 이렇게…”
급하게 가방에서 책을 꺼낸 아사쿠라의 손에는 <호감을 얻는 101가지 대화법>이 들려있었다. 막무가내인 칭찬에도 어처구니는 없지만 내심 미소가 슬쩍 나오려고 했으나, 유다이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게 더 중요했다. 결국 유다이는 자신을 아사쿠라 죠라고 소개하는 소년을 무시하지 못하고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니야.”
죠는 전생의 유다이와 자신의 이야기를 짧게 얘기하며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감사합니다…
“저도 유다이 상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보여도, 고등학생의 도움을 받는 파렴치한 사람은 아닌데 말야…”
“그럼… 일 년 뒤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허…”
“…”
“밥이라도 와서 같이 먹던가.”
“…네!”
“혼자 밥 먹는 거 뭔가 외롭거든.”
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꾸벅 인사하고 돌아갔다.
죠가 등장한 순간부터 모든 일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유다이가 당직이 끝나고 귀가하자 죠가 집 앞에 쭈그려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유다이는 죠를 깨워 집 안으로 밀어넣은 뒤 급하게 핸드폰 어플로 돈가츠 도시락 두 개를 주문했다.
“어제 너무 설레서 잠을 설쳐버려서…”
“에… 이게 그럴 일이야? 그냥 밥 먹는 건데?”
“네. 저에게는…”
죠는 말끝을 흐리며 유다이와 눈을 맞췄다. 유다이 상. 응? 저 사실은… 응. 죠는 유다이를 다시 천계로 돌려보내야 하는 임무가 있었던 것을 상기해냈다. …아니에요. 도시락에 얼굴을 처박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죠는 조금만 더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있지, 나말야. 전생보다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야. 내가 잘하고 있나, 싶은 불안감.”
“…”
“이것도 욕심이겠지.“
유다이의 고민에 더 깊은 생각에 잠긴 건 죠였다. 죠는 밥을 미처 씹지도 못한 채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내가 너를 구했다는 거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말야.”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내가 소방관이 된 걸까? 싶기도 해.”
“코가 상은… 곧 소멸될 거예요.”
“갑자기?”
정해진 생에 있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유다이 곁에 천사가 있었다는 것. 죠는 유다이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유다이의 손에 들려있던 나무젓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함께 있어드릴게요.”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와, 조금 무서운데…”
“……알아서 해…”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딘가 살벌한 화법에 유다이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아사쿠라 죠는 학교가 끝나면 유다이의 집으로 달려왔다. 당직을 서야하는 소방관의 업무 특성상 매번 유다이가 집에 있지 않았으니 유다이는 죠에게 열쇠를 건네줬다. ‘나에게 이런 것을 주셔도 되는 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 죠가 생각해온 유다이보다 이 생의 유다이는 더 잘 웃고, 사람을 잘 믿었다. 생각해오던 것과 다른 것에 죠는 또 다시 마음이 욱씬거렸다. 유다이 상은 정말 멋진 사람이야… 그가 전생에 전장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었다는 건 이생의 그와 정확히 대조되어서 죠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졌다. 그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임무는 그에 대한 호기심 아래에 깔려 진작에 잊혀진지 오래였다.
“유다이 상, 어째서 저에게 항상 이렇게 잘해주시나요…”
“으음… 오늘 셰프특선 도시락이 그렇게 감동이었나?”
동파육을 베어물던 유다이는 갸우뚱거리며 죠의 도시락을 확인했다. 한 입도 안 먹었네…
“나는… 내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걸.”
“…(저는 천사인데도요… 감동이다.)”
“그냥 아사쿠라는 무시할 수 없는 눈빛이 있달까…”
“…(기쁘다…)”
“이거 봐. 지금도 아무소리도 없이 눈으로 말하잖아!”
“그런가요…”
“뭐가 또 그런가요, 야. 아, 벌써 시간이… 나 삼십 분 있다 가봐야 해.”
유다이는 추가로 구매한 밥을 죠의 도시락 옆에 놓는다. 이정도는 되어야 배부르겠지? 우와… 티비나 보다가 집으로 돌아가. 네에… 다녀오세요. 유다이는 손을 흔들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다이의 집에 혼자 남겨진 죠는 도시락을 남김 없이 다 처리하고, 티비를 틀었다. 뉴스만 계속 나오는 채널을 돌리지도 않고 멀뚱히 화면을 바라봤다. 유다이와 함께 할 수 있어 잠깐이나마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화면에서 소방관들이 불타오르는 공장으로 달려들어간다. 천사의 직감은 틀릴 수가 없다. 얼굴이 미처 보이지 않았어도, 죠는 유다이를 찾아냈다. 그는 전생처럼 빛과 함께 소멸되겠구나. 죠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갔다.
죠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민간인은 진입조차 불가한 상태였다. 밖으로 겨우 구출된 유다이는 숨만 겨우 붙어있었다. 인산인해의 상황에서 유다이를 찾는 것은 쉬웠으나 눈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는 것은 어려웠다.
”유다이 상…”
”다음 생에도… 다시 똑같은 삶을 사실 건가요?”
”…아마도.”
”그럼…… 그 옆에 제가 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응.”
”그때도… 내 옆에 있어줄 수 있어?”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어쩌지. 이번에는 죽고 싶지 않다……”
”그래도 많은 사람을 살려내서 다행이야…“
마지막까지 모든 힘을 싣어 눈꺼풀을 들어올려 죠를 눈에 담아내던 유다이의 숨이 멎어들었다. 아사쿠라… 살아남을 거지? 나를 위해서. 유다이는 죠의 품에서, 눈을 감는다. 죠의 눈물이 유다이의 볼 위로 떨어진다.
코가 상, 이번에는 조금 달랐을까요?
3. 사랑
천계에 먼저 도착한 코가 유다이는 양 옆에 시게타와 무라타 사이에서 애를 먹고 있었다. 뭐 이리 궁금한 게 많은 거야! 물론 코가는 이런 상황이 싫지 않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이렇게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네, 천사들이. 코가가 키득거리자 시게타가 코가에게 찡그린 표정을 보인다. 그러니까, 코가 상.
”코가 상이 아사쿠라의 운명의 상대라고요?“
”으응. 운명의 상대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코가 상… 인간계에서 사고치시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랬지! 천계 기억이 성인되면 사라진다는 걸 안 알려줬잖아!“
”알려드렸어요…“
”명부가 자동으로 소멸되어야 천계로 넘어오실 수 있었던 건데… 아사쿠라가 손을 대서 환생하신 거고요.“
”…죠를 너무 뭐라하진 마.“
”……허.“
”행복했어… 우리는.“
“그랬겠죠. 당연히.”
어느 천사가 자처해서 인간계에 몇 번씩이나 내려가냐고요. 코가는 아사쿠라를 기다리면서도 즐거웠다. 감정을 배워오면 뭐하나. 사람이 속도 없이 맨날 웃기만 하고! 코가는 툴툴거리는 시게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우리 죠는 언제 올까나…
아사쿠라 죠는 마지막까지 유다이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도착했다. 아사쿠라가 향한 곳은 명부를 관리하는 2관리실이었다. 시게타 군… 오랜만입니다. 저, 제가 찾을 게 있어서…… 시게타는 한 마디 없이 아사쿠라를 창고 방에 들여보내줬다. 나와. 이제. 불 꺼야 해. 명부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유다이는 찾을 수 없었다. 시게타는 아사쿠라를 이끌고 무라타에게 데려갔다. 무라타의 옆에는… 유다이가 웃으며 서있었다.
코가와 마주친 아사쿠라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왜 여기 계세요? 여기는… 천계인데… 천국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소원을 들어주셨나봐~ 무라타 옆에서 또 거짓말한다.
“그야… 나도 죠와 같은 천사니까?”
“…아아?”
”코가 상이 천사…?“
”응! 우리 같은 사명감을 갖고 내려가서 만난 거야.“
”……저는 정말 다시는 못 볼 줄 알고…“
“오자마자 소멸 명부를 찾아봤어요. 그래도 나오지 않아서…..”
“이번엔 바로 시게타가 처리했다더라.”
“네…”
“이젠 돌아갈 시간도 안 세어봐도 되잖아.”
“이래서 내가 천국에 오고 싶었던 건가봐.”
“나를 믿어준 너를, 끝까지 사랑하고 싶어서.”
“역시… 유다이 상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천사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