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가 유다이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것은 공연이 끝난 뒤의 회식 자리에서였다.
유다이의 자리는 역시 아티스트들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이었고, 그에 반해 죠는 구석 테이블, 그중에서도 벽과 가장 가까운 자리로, 옆 사람이 테이블 중앙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등지는 바람에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일지도. 희미한 존재감 덕분에 저 멀리 앉은 유다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스키야키 국물에 야들야들하게 익은 고기 한 점, 따끈따끈 쌀밥 한입, 맥주 한 모금, 그리고 눈으로는 유다이를.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이 밀려온다. 죠의 광대가 부쩍 봉긋해져 있다는 사실 또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터다.
딱 이 정도의 거리감으로도 충분했다.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럴 리가 없단 것도 알았다. 퍼포먼스 디렉터인 유다이는 함께 일하는 스태프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 이가 가끔 변두리에 나와 손이라도 흔들어 주면 그걸로도 족한 것이다. 앗, 유다이 상은 취하면 텐션이 낮아지는구나. 의외의 모습. 메모메모⋯. 그렇게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덧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가 됐다. 죠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혼자서 홀짝거렸어도 취기가 오르긴 했는지 행동이 굼뜨게 되었다. 사람이 다 빠진 가게 안에서 느릿느릿 오른팔을 꿰어 넣고, 그다음엔 왼팔을⋯. 그러는 와중 가게 문이 도로 열렸다. 그 거침없는 모양새에 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다. 헉. 유다이 상이다.
가게 안을 둘러보던 유다이는 목표물을 발견한 것마냥 성큼성큼 죠의 옆으로 와 거의 쓰러지는 듯한 꼴로 착석한다. 죠의 얼굴 너무 가까이에 유다이의 얼굴이 위치해 있었다. 아. 취했다. 취해서 따끈따끈하고 어딘가 헐렁해진 유다이 상이야⋯!!! 옆얼굴로 유다이가 내뿜는 뜨거운 숨이 느껴진다. 있지, 네(꿀꺽), 오줌 마려워. 그러고선 바지 버클을 향해 내려가는 유다이의 손을 턱 붙잡은 죠다.
– 싸고 싶어.
– 여기선 안 됩니다.
– 싸게 해줘.
– 안 돼요, 아아.
유다이는 역시나 힘이 세다. 당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죠는 진땀을 뺐다. 손을 저지하기 위해 몸을 거의 겹친 상태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 유다이도 젊은 피는 못 이기는지 결국 죠에게 질질 끌려가 강제로 화장실에 갇혔다. 폭풍처럼 몰려와 정신을 쏙 빼놓은 통에, 죠는 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듯이 무릎을 접고 앉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 안 나와, 안 나온다고⋯⋯.
– 네? 아앗! 안 돼요!
등 뒤로 문이 발칵 열리는가 싶더니 바지 앞섶을 풀어헤친 채로 등장한 유다이다. 덜렁거림의 충격은 잠시, 죠의 머릿속에 저질의 카피가 여럿 스친다. 나름 유명인이라는 사람이 기사라도 나면 어쩌려고! 죠는 빠른 판단력으로 케이를 거의 밀치듯 다시 화장실로 밀어 넣은 다음, 저 자신도 함께 들어와 문고리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끔 문을 막고 섰다.
– 아아. 너무 오래 참았나봐⋯. 그치만 도저히 H의 말을 끊을 수가 없어서⋯. H는 자기 말에 집중하지 않으면 섭섭해 하는 타입이라고⋯. 아아 마려워⋯. 마려운데 안 나와⋯⋯.
– 저, 유다이 상, 괜찮으세요?
– 나 지금 얼굴 노랗나? 이대로 죽으면 어떡하지? 살려줘, 아아⋯⋯.
쏟아지는 목소리를 잠재운 건 죠의 손이다. 죠는 유다이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들고 선언하듯 말했다. 유다이 상이 죽지 않도록, 제가 도와드릴게요. 유다이는 풀린 눈으로 그 결연한 표정을 마주한다. 딸꾹. 대답 대신 딸꾹질이 시작됐다. 여러모로 제정신 아니라는 증거였다.
죠는 우선 흐물흐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유다이를 뒤에서 끌어안듯이 단단히 지탱하여 소변기 앞에 세웠다. 그러곤 피가 몰려 꼿꼿해진 성기를 대신 쥐고, (분명 이쯤에서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리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유다이가 변태 파문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도와야만 한다.) 다른 손으로는 유다이의 아랫배를 지압하듯 꾸욱꾸욱 눌러 자극한다. 딸꾹, 가까이 밀착해 있어서인지 유다이가 딸꾹질을 하자 그 몸의 진동이 죠에게까지 느껴졌다. 곧이어 구멍 끝에 조그마한 방울이 맺힘과 동시에 시작된 부르르한 떨림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느낄 새도 없이, 쪼로로, 소변이 떨어지자 제대로 조준하기 위해 애를 먹은 죠다.
– 유다이 상, 이제 좀 괜찮으신가요?
바지를 입히고 버클까지 꼭꼭 잠궈 준 다음 (자꾸만 끔찍한 기사가 떠올라서, 제대로 잠근 것이 맞는지 유다이의 바지 앞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죠는 유다이의 손을 끌어다 쏴아아 떨어지는 물에 자신의 손과 함께 적셨다. 유다이는 가만가만 죠의 손길에 리드당하고 있다. 눈을 느리게 꿈뻑이면서.
– 으응. 사실 중간부터는 술이 좀 깼어.
– 아! 정말 다행입니다!
눈에 띄게 밝아진 죠의 얼굴을 잠자코 응시하던 유다이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방금 엄청난 짓을 한 것 같은데. 머릿속에 스모그가 낀 것처럼 사고가 돌아가질 않는다. 얜 누구더라. 몇 번 마주친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 유다이는 죠의 얼굴을 골똘히 뜯어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이름도 기억 못하는 상대의 어깨에 풀썩 고개를 묻는다. 아아, 몰라. 토할 것 같아. 데려다 줘.
– 그런데 유다이 상, 방금 하신 말들은 속으로 하려던 생각이셨죠?
– 응? 들렸어?
– 네⋯. 많이 취하신 것 같아요.
– 그런가⋯⋯.
– 아, 모르셨겠지만, 제 이름은 아사쿠라 죠입니다.
– 응⋯⋯.
– 연출부에서 한 달 전부터 일하고 있고요. 아, 연출이지만 입사하게 된 계기는,
– 응, 아사쿠라, 택시 불러주면 타고 갈게.
말을 잘라먹혔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차릴 수 있다. 죠는 자신이 그만큼 유다이에게 흥미롭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체감한다. 그래, 딱 그 정도 거리감이 맞는 거다.
죠가 어깨에 유다이를 매달고 나온 순간 술집 앞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 죠의 존재는, 유다이를 부축해 주고 있는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다. 유다이를 걱정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더러는 취한 그의 얼굴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는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죠가 부른 택시를 누군가 잡아타려 했다. 엇, 엇, 거리고 있는데 유다이가 스르르 몸을 떼어낸다. 택시를 가로챈 건 H군. H는 유다이의 몸을 잡아 끌어 뒷좌석에 그를 욱여넣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 탄다. 유다이가 H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는 모습이 보이고.
멀어지는 택시 뒤로 사람들의 표정은 여전히 즐겁다. 그 사이에서 죠는 두 눈만 꿈뻑이다가, 앗 막차, 시계를 확인하고 걸음을 옮기려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아사쿠라! 아사쿠라 죠! 고마워! 널 꼭 기억할게!
얼마 가지 못한 택시 뒷좌석의 차창이 열리더니 유다이가 고개를 내밀고 소리친다. 황급히 목덜미를 잡아채는 H의 손에 금방 제지당하긴 했지만. 유다이의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고, 그 뒤로는 자연스레 죠에게 관심이 옮겨 붙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둘이 친한 사이였어? 죠는 얼굴이 마구마구 붉어진 채로 모두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시시하게도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린다. 역까지는 한참을 뛰어야 했는데, 죠는 자신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이유가 뜀박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았다. 유다이 상이 내 이름을 불렀어! 상기된 두 뺨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죠가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혼잡한 시부야 거리에서는 대형 추돌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 고의적인 역주행으로 차를 여럿 들이받았고, 유다이가 탄 택시 또한 희생양이 되었다.
하필이면 유명인이 사건에 얽혀 버렸기 때문에 아침부터 H의 안위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고, 그중에는 ‘동승하고 있던 프로듀서’ 정도로 짤막하게나마 유다이를 언급하는 것들이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차창 유리가 박살나며 H를 덮쳤고, 그 때문에 얼굴이 군데군데 찢겼다고 했다. 얼굴로 벌어먹고 사는 입장으로서는 큰 악재였다. 때문에 회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직원들은 회식으로 인한 숙취를 느낄 새도 없이 이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처해야 했다.
다행히도 유다이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다고 했는데, 바로 그 점이 H의 팬덤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유다이와 H의 자택은 방향이 완전히 달랐는데, 취한 유다이를 챙기기 위해 H가 택시에 동승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H만이 큰 외상을 입고 유다이는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만큼 다친 곳이 없다는 점을 그들은 주로 헐뜯어 댔다. 죠는 부들거리며 토독토독 답글을 적다가, 400자 이상은 작성할 수 없다는 경고창을 마주하고 관두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혹은 바라는 것처럼, H와 동행한 일은 절대로 유다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죠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집 방향도 다른 H군이 유다이와 함께 택시에 탄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정말정말 무례하게도 저만의 망상일 수 있지만, 역시⋯⋯.
죠의 잡념을 뚝 잘라 먹듯 저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유다이가 등장했다.
하나의 공식처럼, 유다이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모여들었고, 사고의 여파로 인해 오늘은 더더욱 심한 관심이 유다이에게로 쏟아졌다. 죠 또한 그 틈바구니에 껴 있었으나, 괜찮느냐거나 힘내라거나 하는 말은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고, 다치지 않아 다행이에요, 하는 작은 목소리를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해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린 꼴이 됐다.
저녁 쯤이 되어서야 테라스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유다이를 볼 수 있었다. 기회는 이때뿐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죠는 황급히 입고 있던 점퍼에 손을 넣어 보았다. 이런. 아무것도 없다. 죠는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뒤지는 번거로운 짓을 해야만 했다. 그리곤 의도치 않게 마주쳤다는 듯 말을 걸자. 완벽한 계획이다. 죠는 성큼성큼 테라스로 나가 유다이의 곁에 다가섰다.
– 저, 유다이 상.
– 아. 안녕하세요.
–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 뭐. 보시는 대로.
어쩐지 대화가 묘하게 엇나가는 듯했다. 아. 게다가 유다이는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선 재떨이에 꽁초를 담궈 버린다. 이러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는데. 죠는 덩달아 급하게 연기를 흡입한 뒤, 대차게 콜록거리다가 아직 반도 타지 않은 장초를 재떨이에 담궜다. 그걸 앞에서 보고 있는 유다이는, 대체 뭐 하는 짓이냐는 눈초리다. 눈시울이 빨개진 죠는 기침을 아직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 사고가 아니더라도 걱정했어요. 그날 많이 취하셨잖아요.
– 아아. 그랬나. 워낙 정신이 없어서요.
– 아. 그렇죠, 그러시죠. 그럴 만 해요.
– 우리가 같은 테이블이었나요?
– 그런 건 아니었고⋯. (말하자면 너무 길고 엄청나게 민망해하실 것 같다.)
–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서요.
– 네? 그러면⋯⋯.
– 미안하지만 이름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온몸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눈앞이 약간 어찔해졌다가, 제 대답을 기다리는 유다이의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진한 얼굴에 퍼뜩 정신이 든다. 죠는 눈에 띌 정도로 티나게 파들거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 역시 그런 사고가 났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어쩌면 H군보다 더 심한 후유증이군.
그래, 유다이 상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야!
생각에 매듭을 지음과 동시에 눈앞의 유다이가 죠의 파들파들 떨리는 어깨를 쥔다.
– 괜찮아요? 하루종일 이런 말 듣기만 했지, 남한테 하게 될 줄은 몰랐네.
– 아앗⋯.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사쿠라 죠예요. 한 달 전에 연출부로 입사했습니다.
– 아. 아사쿠라 군. 기억할게요.
말을 마친 유다이는 죠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서는 미련없이 멀어진다. 그건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한 뉘앙스였고, 죠는 왠지 다음번에도 유다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아니, 다음번이라는 게 있긴 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죠는 축지법 쓰듯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한달음에 유다이를 뒤쫓아 그 손목을 턱 잡았다.
– 지금은 연출부이지만요. 유다이 상을 보고 이곳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모르셨겠지만, 아니, 알 필요도 없으시겠지만, 제가 농구를 포기하고 꿈이 없을 때 유다이 상이 나온 다큐멘터리를 봤거든요. 유다이 상께서 마라톤을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말하셨잖아요. 인생을 바친 일이라고 해서 거기에 인생이 송두리째 끌려다니면 안 된다고, 그 말씀에 저도 새롭게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정말 팬이에요. 그리고 그날은⋯⋯. 유다이 상께서 급하신데 싸지를 못하셔서요. 제가 직접 주물러드렸는데. 정말 기억하지 못하시는 걸까요?
절박한 목소리로 구구절절 전하는 진심이다. 반면 유다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어쩌면 감동적인 헌사는 뒷전이 되어 버린 채 마지막 부분만 남은 듯하기도 했고.
– 그러니까 우리가⋯⋯.
– ⋯⋯.
– 섹스를 했다고요?
어딘가 쿡쿡 찔린 듯한 표정의 유다이다. 일에 있어서는 짜증나 죽겠다는 티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가(성질 죽이기 위해 안무연습실 한켠에 다리 꼬고 앉아 무서운 표정으로 폰 액정만 툭툭 두드리고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나 섹시했기 때문에⋯.) 어찌 손 쓸 바도 없이 곤란해 죽겠다는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죠도 덩달아 당황해 버렸다. 게다가 아주 가까이 다가온 유다이의 몸에서 특유의 열감이 전해지기까지.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다. 에, 그러니까. 죠가 진땀 빼며 해명하려는 순간.
– 죠! 한참 찾았네, 어라, 코가 상도 같이 계셨어요?
– 아, 그게.
테라스 통창으로 둘을 목격한 불청객이 말을 건다. 죠의 연출부 선배다. 유다이가 곁에 있어서인지 짐짓 친절한 투의 목소리였지만 눈빛만은 사납다. 죠는 내일부터 로케이션지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한창 바쁘게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있어야 할 때였다. 그러니까 이건 농땡이 피우는 걸 들킨 꼴이나 마찬가지. 죠는 선배와 유다이 둘 모두에게 각자 다른 의미의 묵례를 꾸벅꾸벅 건네고서는, 생각하시는 그런 일 없었습니다 정말로요, 드물게 빠른 속도로 말을 엎지르듯 내뱉고서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렇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얼굴로 중얼중얼 해명하는 걸 잘도 믿겠다고. 유다이는 그 자리에 한참을 우뚝 서 있다가, 담배를 빼어 무는 것으로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대신했다.
아티스트, 스태프를 막론하고 같이 일하는 녀석들이랑 다 한번씩은 자 봤다고. 입사 초기에 유다이를 따라다니던 소문이다. 업계에 발 담근지 얼마 되지 않은 뉴페이스인데다 댄서 출신도 아니었던 유다이를 덥썩 캐스팅해 디렉터 자리까지 준 부사장의 지시가 화근이었다. 몸값 비싼 디렉터 스카웃할 바엔 가능성 있고 충성심 높아 보이는 놈 데려다 키워보자는, 기업의 임원으로서 짱구 좀 굴려 내놓은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그가 남자 여자 가리지 않는 호색한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베개 영업으로 들어왔다던데? 처음부터 야릇한 소문 달고 등장했으니 당연히 그런 쪽으로 찔러 보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같은 팀 댄서 A랑 잔 것도 맞고, 다른 팀 스태프 B랑도 그랬고, 아티스트 중엔 H와도 딱 하룻밤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건 다 어렸을 때 일이라고. 나이가 점점 차면서 일 욕심도 생기고 책임감도 생긴 지금 이 시점엔 그렇게 평판에 먹칠하는 짓 안 한다.
그러니까 그 사건의 진상을 좀 알아야겠다고.
예정된 출장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서야 재회하게 된 둘이다. 아니, 며칠 내내 신경 확 돋친 꼴이었던 유다이가 죠의 출근을 확인하자마자 손목 잡아 끌고 온 것이니 그냥 재회라기엔 부자연스럽지. 인적 드문 비품 창고에 쳐넣고 보니 이건 뭐, 납치 수준이다.
– 유,유,유다이 상께서 갑자기 왜⋯.
– 메신저는 왜 안 봐?
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 액정을 켜 사내 메신저를 확인한다. [아사쿠라군, 잠시 미팅할까요?] [아. 출장이 길어진다고 들었네요. 괜찮으면 전화할래요?] [아사쿠라군] [혹시 피하는 건 아니죠?] [어이] [메신저 보라고] [씹냐????] 며칠에 걸친 메시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꼴로 전송되어 있다. 사무직이 아니기에 사내 메신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죠의 입장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 죄,죄,죄,죄송합니다⋯⋯.
– 사람 심란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연락 한 번이 없어? 응?
– 앗, 심란⋯. 저 때문에요⋯⋯.
– 그래, 아사쿠라 죠, 며칠 동안 너만 기다렸다고!
유다이가 외치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명치께에서 뱅뱅 돌다가 가슴속으로 예고없이 쿡 들어찬다. 이름을 기억해 주신 걸로도 모자라 며칠 동안 기다리기까지 했다니. 묘하게 기뻐 보이는 기운에 당황한 유다이는 죠의 멱살을 쥐려다가, 앗 그러고보니 이 녀석 계약서에 피도 안 마른 신입이잖아, 혹시 파워하라가 될까 싶어 손을 거두고 한숨 쉰다.
– 혹시⋯ 내가 먼저 건드렸어?
– 건드렸다는 게⋯.
– ⋯⋯.
– 아.
잘잘못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유다이에겐 중요한 사안이었다. 아티스트를 포함한 팀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몸이든 마음이든 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온 유다이였다. 그런데 자제되지 않을 정도로 술에 진탕 취해서는 옛 버릇 남 못 주고 아무데서나 아랫도리 부볐다고. 게다가 그걸 기억하지도 못하고.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 신입이 키도 번듯한데다 반반하게 잘생겼다는 데서 왔다. 물론 절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절대로 내가 먼저 건드렸을 리 없지만⋯⋯.
– 그, 화장실에서의 일 말씀이시죠.
화장실. 유다이는 입술을 잘근 씹는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좁고 더러운 화장실에서 짐승처럼⋯. 죠의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을 쥐락펴락 당하는 기분이었다.
– 유다이 상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정말 없었습니다.
– 그럼 주무르고 쌌다⋯는 그건 뭔데?
– 아. 그건. (여기서부턴 정말 안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빨리 말해! 내가 며칠이나 기다렸는 줄 알아!
– 그건, 그게⋯.
– ⋯⋯.
– 소변이요.
맥이 탁 빠진다. 그날, 죠의 폭탄 발언 이후 유다이는 머릿속으로 온갖 변태적인 상상을 떠올리고, 그중 무엇이 현실이었을지를 가늠해 보며 괴로워하길 반복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죠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섹스를 했다. 이 체위, 저 체위 거를 것 없이. 꿈에도 나올 지경이었다고.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더 수치스러운 진실에 유다이의 몸이 작게 진동했다.
– 유다이 상, 괜찮으세요?
– 안 괜찮아⋯.
휘청거리는 유다이의 팔을 부축하려다가 방향을 틀어 허공을 쥐는 손바닥이 커다랗다. 그러니까 저 커다란 손으로, 거길 주무르면서 소변이 나오길 유도했다는 거지. 아기들한테나 하는 것처럼. 차라리 교통사고를 열댓 번 더 당했으면 당했지, 이런 충격은 다신 겪고 싶지 않다. 유다이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죠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허공을 응시한다.
– 회사 그만둬야겠다.
– 아,안돼요! 차라리 제가!
– ⋯진짜로 그만 두진 않을 거야.
유다이는 욱씬거리는 관자놀이를 느끼며 박스 위에 대충 걸터앉았다. 덕분에 반강제로 소품 더미에 앉아 있던 죠와 눈높이가 맞아든다. 사방으로 박스가 쌓여 있는 탓에 좁은 거리에서 무릎이 스쳤다. 죠가 그걸 의식하고 있는 듯해 슬쩍 떼어냈더니 꼼지락 다시 붙여온다. 간지럽게 뭐하는 거냐, 하고 들여다보면 할 말이 있는 듯 연신 달싹이는 입술.
–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음⋯⋯. 네가 왜?
– 유다이 상은 제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분이니까요.
–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닌데.
– 좋은 사람이라서 존경하는 건 아닌데요⋯.
– 어이, 거기까진 안 물어봤어.
감사하다거나, 존경한다거나. 아티스트를 여럿 담당하면서부터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건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고백. 유다이는 이제 아주 겹쳐놓다 못해 제 무릎과 무릎 사이로 쑥 들어온 죠의 허벅지를 내려다보며, 떠오르지 않는 그날의 일을 더듬어 보려 노력했다.
– 내가 그런 짓을 해서⋯ 싫어졌을 텐데.
– 그럴 일 없어요.
– 더럽잖아? 남의 그런 걸 만지는 거. (속으로 좀 찔렸다.)
– 영광이었습니다.
– 미쳤군.
유다이는 혀를 내두른다. 동시에 자신의 앞섶까지 바짝 붙은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자, 화들짝 놀란 죠가 긴 팔다리를 과장되게 푸드덕대며 멀어졌다. 아악!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중심부를 맞을뻔한 유다이는 황급히 고간을 쥐고 다리를 움츠린다. 저쪽 벽으로 바짝 붙은 죠는 저가 당할 뻔한 것도 아닌데 큰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파들거리고.
– 너랑 엮일 때마다 내 여기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 같은데.
– 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내뱉은 말인데도 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골똘히 머리를 굴린다. 유다이는 푸핫 웃으며 채 떨림이 잦아들지 않은 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반사적으로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손을 떼자 녹을 듯이 흐물흐물해지는 모양새가 웃기다. 다시 손을 댄다. 숨을 들이마시다가 곧바로 긴장을 씹는 턱. 손을 뗀다. 죠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유다이 상 저 힘들어요⋯, 한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반응해? 유다이는 흥미 돋은 눈빛으로 죠를 관찰한다. 그러다 시선이 한 곳에서 멎었다.
– 아아. 나한테만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게 아니구나?
– 네? 앗, 앗.
유다이의 눈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알게 된 죠가 티셔츠를 주욱 늘려 아랫도리를 가렸다. 상기된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여봤자 빨개진 목덜미가 더 잘 보일 뿐이다. 유다이는 이제 제법 의기양양해져선 죠를 내려다보며 그 목덜미를 꾸욱 감아 누른다.
– 어이 변태 군, 다음엔 다른 곳에서 볼까?
– 다른 곳이요⋯.
– 응, 화장실 말고 창고 말고.
– 저에게 다음이 있나요?
– 그럼 없겠어?
말귀를 못 알아먹을 때마다 가해지는 손의 악력. 죠는 유다이에게 목덜미를 연신 꾸욱꾸욱 눌리면서, 아주 조그맣게,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속엣말을 토해냈다.
– 이,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맥이 빠지듯 죠의 목덜미를 휘감은 손에 스르르 힘이 풀린다.
– 어이, 내가 섹스하자고 꼬셨는데 그런 멘트로 받아치는 건 반칙이지. 나만 되게 안달난 것 같잖아.
– 앗, 앗⋯.
드디어 고개를 들 수 있게 된 죠는 정신없이 괴롭힘 당한 탓에 열감이 잔뜩 오른 채로 유다이를 올려다본다. 아. 그런데 유다이의 얼굴도 저만큼이나 무방비하게 달아오른 모습. 그게 정말이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죠는 처음으로 자신이 품은 마음이 존경이나 동경이 아닌 욕정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방증하듯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아랫도리가.
죠의 머릿속을 뿌옇게 만든 불순물을 걷어내듯 유다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항상 멀리서 지켜보거나, 훔쳐보거나, 엿보기만 했던 사람과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겹치고 있었다니. 유다이가 멀어지고서야 그 거리감이 몸소 확 느껴진다. 이 사람과 이럴 수가 있는 거구나.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
– 자주 보자, 아사쿠라 죠.
유다이의 한마디가 죠의 몸 내부를 뱅글뱅글 돌고,
종내에는 부르르한 떨림으로 빠져나와서,
결국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