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도 아니지만 그 몇 년 전의 일들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어. 내 젊은 시절에도 깊은 족적을 남겼던 관계에서의 여러 역학과 그 파동에 대해.
그해 가을 U 예술대학에서 일 년 동안 사용할 작업실로 A 아틀리에를 배정받은 건 세 사람이었어. 조형 예술학부 뉴미디어 학과 4학년 코가 유다이, 같은 뉴미디어 학과 3학년이었던 나, 그리고 회화과 신입생 아사쿠라 죠.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유다이와 나는 눈빛만 바삐 교환했어. 작업실은 반 별로 배정받곤 했기에 회화과 학생과 한 작업실이 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거든. 유다이는 배정 절차를 확인하고 싶어 했어. 학과 사무실로 향하던 복도에서 우리는 신학기에 시작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로 대화를 리드하는 건 유다이 쪽이었고 나는 귀를 기울였어.
유다이는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신인 작가였어. 그와 나는 몇번인가 같은 강의를 듣고 종종 파티에서 만났지만 서로를 잘 알진 못했어. 유다이가 학생이라기보다는 이미 작가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했어.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제만으로도 바쁜데 이미 그는 갤러리 초청으로 개인전도 두 차례나 진행한 경험이 있었어.
어쨌든, 나 같은 사람들은 따로 하다 온 일도 있으니까, 라고 유다이는 겸손하게 말했어. U 대학교는 일반 4년제 대학을 다니다 온 사람, 직장을 다니다 온 사람, 유학생이 많아 이십 대 중후반 나이대의 학생들이 흔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성취를 겸양 섞어 말하고 있다는 건 자명했어. 그 무렵 그는 막 달콤한 과실을 직접 수확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젊은 농부처럼 부지런히 작업에 몰두할 계획만을 세우고 있었어. 작품 얘기를 입에 올릴 때면 말이 빨라지고 상세해졌지. 나는 유다이가 대번에 좋아졌어.
학과 코디네이터는 서류를 뒤적이더니 간단히 답했어. 아사쿠라라는 학생은 회화과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스튜디오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한 작업을 한다고. 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배정이고, 우리 둘의 양해를 바란다는 거였어. 유다이는 가만히 수긍하고만 있지는 않았어.
물감 냄새 같은 걸 계속 맡고 있으면 예민해져요. 특히나 저희 작업에서는 작업실의 쾌적한 환경이 중요하고요.
유다이의 반론을 가만히 듣던 코디네이터는 무심히 응수했어. 물감 냄새가 문제인 거라면 괜찮을 거라고.
그 예상은 꽤 적중했어.
네 작업은 오직 연필, 목탄, 콩테 같은 단순한 재료들만 사용했어. 여러 가지 색채를 아름답게 배열하는 일에는 관심 없는 듯 너는 종이에 기본 드로잉 작업만을 했어. 차콜지, 러프글로스지, 광목천 등 온갖 크기와 다양한 질감의 흰 종이들을 실험하듯 사용해 가면서.
처음 네 작품을 보았을 때의 인상은 매우 소박하다는 거였어. 고립감이 드는 섬 같은 그림이었어. 무한한 기하학적 나무뿌리 도형들이 배경처럼 자리했는데, 내 느낌엔 스케일에 비해 여백이 너무 많아 보였어. 네 작업공간에 쌓여 있는 많은 스케치 작업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비디오게임의 콘셉트아트, 또는 아직 학생 작품이 확실하다는 평을 들을 게 분명했어.
그래도 넌 고작 스무 살이었는데 첫 학기 비평 수업은 네게 힘든 시간이었을 거야. 뮐러 교수는 네 그림에 대해 아주 날카롭게 말했어. 완성도와 밀도가 떨어지는 그림이라고 했었지. 작품에 색채가 없으니 질감 표현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전반적인 무게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어. 네 차례가 돌아오면 그 학기 내내 있던 크리틱 중에서도 특히나 신랄한 혹평이 쏟아졌어. 난 종종 네가 걱정스럽기도 했어. 자신감을 잃지는 않을까. 학교에 적응은 잘 하고 있을까. 하지만 돌아보면 너는 평소와 같은 무연한 얼굴로 도화지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지.
한번은 양 교수가 심한 말을 하기도 했었잖아. 네가 그려온 그림이 반찬 하나 없는 흰 쌀밥 같은 작업 같다고 말이야. 양 교수는 네 그림이 서양식으로 비유하자면 마멀레이드 없는 식빵, 크림치즈를 바르지 않은 베이글, 또는 크랜베리 소스를 생략한 칠면조 구이일 거라고 말했어. 그날 수업이 끝나고 네게 다가가 말을 걸었어. 같은 작업실을 쓰면서도, 한 학기 내내 수업을 함께 들으면서도, 그때야 제대로 대화해 보는 거였지.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난 빵에 아무것도 안 바르고 먹는 걸 좋아해.
내 말에 네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어. 백지 같은 인상에서 상상한 것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실은 저도 흰 쌀밥을 가장 좋아해요.
나중에 우리는 언제 이렇게 친해졌는지 돌이켜 봤지만 셋 중 누구도 명확하게 기억해내지는 못했지. 하지만 너도 유다이가 네 작업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남겼던 날만은 기억할 거야. 그게 네가 유다이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일이 너와 유다이와의 거리감을 좁혀준 것은 확실했어. 목재 이젤 앞을 지나가며 유다이가 가볍고 유려한 독일어로 인사했을 때 말이야.
“전부터 생각한 건데, 죠의 그림은 힘이 들어가기 쉬운 재료를 쓰는데도 선이 과하지 않아. 정말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과시적이지 않고 장황하지 않아. 놀라울 정도로 정직해.”
그때까지 항상 너는 말 없이, 표정 없이 네 자리에 앉아 있었어. 흑연을 쥔 왼손만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그런데 유다이가 네 그림을 칭찬했을 때 네가 소년처럼 둥글고 앳된 얼굴을 들어 올렸고, 그 순간 나는 다소 굼뜨다고 여겼던 네 동작들이 다르게 보였어. 네 고개의 각도. 눈을 깜박이는 속도. 거기에서는 오직 특정한 소수만을 위해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준비된 듯한 리듬감이 느껴졌어. 감사합니다, 라고 짧게 운을 뗀 후에 네가 덧붙였어.
“저 코가 씨의 작업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최근에 아틀리에에서 작업한 적 없었는데.”
“작년, 그리고 재작년 룬트강*에서 봤어요. 지난 달 M갤러리에서 하신 전시도.”
유다이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어. 열광적인 칭찬에 기뻐 보이기보다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른 작가들도 열심히 보고 다닐 줄은 몰랐네.”
유다이의 반응은 이해가 갔어. 네 작업은 정말 최근 현대미술의 주된 트렌드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았거든. 베를린의 현대미술은 실험, 다양성, 융합과 경계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데 넌 전반적인 예술 사조의 경향성에서 아예 비껴가 있었잖아. 때때로 네 그림은 너무 베이직해 보였어.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물을 정교히 모사하는 보수적인 작업 스타일도 아니었지. 또는 액션 페인팅의 계보대로 추상 세계를 표현하지도 않았어. 너는 그저 홀로 우직하게 너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같았어. 넌 끊임없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섬과 나무 덩굴과 뿌리들 속에서 팝업북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새, 고양이, 쥐 같은 것들을 그렸어. 너무 평범한 것들. 소박한 것들. 사람들이 하도 많이 그려서 이제는 그저 표상처럼 남은.
사람을 그리는 일엔 관심 없어? 언젠가 내가 물었을 때 넌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답했어.
·····이미 많이 있으니까.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더 늘릴 필요는 없지 않냐는 듯한 어조였어. 인물사진을 찍는 나는 그렇게 따지면 어떠한 예술도 하지 못한다고 우겼지만 말이야. 네가 말한 ‘많이 있으니까’는 이미 그런 작품이 많다는 것과는 다른 뉘앙스였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어.
이따금 사람들은 나한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어. 난 너와 나누던 약간씩 엇갈리는 듯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독특한 템포를 가진 사람, 이라고 대답하곤 했어. 그러면 꼭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어. 개성이 있다고? 유다이보다 더? 서로 다른 특징이라고 대답할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어. 사람들은 막상 너를 보면 의외라는 듯한 얼굴을 했으니까. 모히칸 머리라든가 체리레드 염색모, 휘황찬란한 얼굴 피어싱, 크로스 드레싱 같은 눈에 띄는 특징을 상상한 게 틀림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유다이의 대답은 나하고 달랐어. 유다이는 네가 편안한 친구라고 말하곤 했어. 난 네 어떤 면이 유다이에게 그렇게 보이는 걸지 궁금했어. 한 학기가 다 가도록 학과 내에서 너와 두 마디 이상을 주고받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빈말로라도 너는 결코 다가가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어. 너는 극단적으로 조용하고 과묵했어. 사람들은 흔히 네 외양만 보고 독일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거라고 넘겨짚었어. 넌 그 오해를 정정할 기회조차 만들지 않았지만 말이야. 실은 넌 영어도, 독일어도 능숙하게 구사했잖아. 너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에 발음이 너무 정확하고 문법 구현이 완벽해서 깜짝 놀랐던 게 생각나. 그렇다면 무엇이 너를 침묵하게 했을까.
한번은 내가 암실에서 인화한 사진들을 책상에 올려두었을 때 드물게 네가 먼저 말을 붙여왔어.
안나는 왜 사람들 사진을 찍어요?
재밌어서. 인물만큼 누가 찍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도 없잖아. 우리 안에 내재하고 투영된 감정을 다른 이들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도 있고 말이야.
수도 없이 받아온 질문이었기에 나는 빠르게 대답할 수 있었어. 같은 질문을 다시 네게 던졌지. 이전에도 한 적 있는 물음을.
넌 사람 왜 안 그리는데?
솔직히 그건 정말 장난기만 담은, 별다른 깊은 의도나 의미가 없는 말이었어. 그런데도 너는 오래 침묵했어. 내 사진에 시선을 고정한 뒷모습에서 한 템포 늦은 대답이 돌아왔어.
······좀, 압도돼서요.
의외로 사람들 무리에서 널 발견하게 되는 날은 금방 찾아왔어. 네가 결국 유다이를 선택했기 때문에. 네 옆에 약속이라도 한 듯 유다이가 있게 되었을 때부터 너는 압도된다고 말한 사람들 속에 있게 됐어. 11월 말에 있던 리암의 파티에서부터였어.
그날 밤엔 여느 예대 파티가 그러하듯 술과 마약이 사방에 널려 있었어. 모두가 코카인을 하고 마리화나를 피워댔지. 사방이 마리화나 냄새로 가득해서 냄새만 맡아도 취할 지경이었어. 너는 맥주병 하나만 든 채였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뻣뻣하게 서 있지는 않았어. 올리브색 카우치 한쪽에서 긴 몸을 구기고 앉아 있었지. 럭비 셔츠에 구제 청바지만 걸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배경에 포스터처럼 잘 어우러져 있었어.
즐기고 있어? 내가 다가가자 넌 대답했어. 네, 재미있어요. 구석에 앉아서 뭐가 재밌다는 거야? 내 면박에도 너는 예의 진지함을 유지한 채 미소만 띄고 말했어.
여기서는 꽤 잘 보여요. 사람들이.
카우치가 향한 방향. 당연히 거실과 부엌 중앙이었고, 그 중심에선 유다이가 사람들에 둘러 싸여 당구를 치고 있었어. 긴 상반신을 유연하게 접어 상판에 대고 채를 쥐고 있는 옆모습이 보였어.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다듬는 태도에서는 주인공인 게 당연한 사람 특유의 기운이 흘렀어.
단언컨대 유다이의 추종자는 많았어. 네가 입학 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코가 유다이의 작품. 룬트강 때마다 교내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의 이목도 집중시키던 뉴미디어와 설치미술을 절묘하게 결합한 시도들.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다 못해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평을 듣고 다음 작품에서는 퍼포먼스 아트를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던 유다이. 그의 퍼포먼스는 시간을 다룬 작업이었고, 짙은 푸른 조명 아래에서 선보이는 여러 리듬감의 달리기와 춤으로 유다이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어. 십 대 시절 내내 운동을 해온 사람이라 맷집이 단련되어 있던 걸까? 나는 빠른 속도로 높은 퀄리티의 작업물을 계속 뽑아내는 유다이가 신기하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조금은 부러웠어. 어떤 사람들은 타고나기를 온전해서 세상의 불공평한 이치를 상기시킨다고 심술궂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
얼마간 사람들과 떠들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에 네 옆에는 유다이가 앉아 있었어.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댄 채 일본어로 낮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지. 파티장은 시끄럽고 난잡하기 그지없는데 너희 둘에겐 그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어. 누구의 시선도 중요치 않은 것 같았고, 그 순간, 두 사람에게는 오직 둘만이 가장 중요한 게 분명했어. 일순 네 그림 속의 세계를 잠깐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게 떠올라. 마치 끝도 없이 계속되는 프랙탈 같은 피타고라스 나무를 배경으로 한 고요한 공간.
키가 훌쩍 큰 둘의 정수리를 나란히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 위치에서 본 두 사람의 머리는 무척 비슷하게 둥글었어.
유다이를 따른 사람은 많았어. 하지만 그와 그 정도로 친밀해진 사람은 너밖에 없었지. 대개는 모두가 단번에 납득했어. 어쨌든 너는 그와 동향 사람인데다 장신의 미남이었으니까. 유다이가 너무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둘의 만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어. 죠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사람이야. 내가 반박하면 다들 유다이는 다르게 말했다고 했어. 뭐라고 말했는데? 친구들은 그저 웃었어.
얼마 후 유다이에게서 직접 그 감상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
죠는 살면서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빨리 호감을 갖게 된 사람이야.
유다이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말했어. 그런 고백을 하는 것은 아주 인간적이고 당연하고 마땅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듯이. 어느 모로 보아도, 너는 강렬함과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유다이는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네게 본능적으로 이끌렸다고 했어.
죠는 본인만의 틀에 파고드는 타입 아니야? 자기 몰두 적일 것 같기도 하고···. 관계 맺기 어려운 타입일 거 같아.
내가 너에 대한 편견을 은근히 드러냈을 때 유다이는 소리 내어 웃었어. 시월의 청명한 하늘 같은 웃음이었어. 유다이가 장난스레 말했어.
실은 그 점이 나하고 정말 많이 닮았어.
유다이가 전에 네가 자신과 닮았다고 말했을 땐 모두가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어. 일본인이라는 점과 껑충하게 큰 키를 제외하면 두 사람은 판이한 이미지였으니까. 작업 스타일도 정말로 많이 달랐잖아. 네 그림은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해설하려는 경향이 아예 부재했어. 한편, 유다이의 작품에서는 투쟁하는 듯 잔뜩 팽창하고 과열된 에너지가 느껴지곤 했어. 하지만 그때 유다이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로 두 사람의 영혼이 어떤 방식으로인가 감응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던 게 기억 나.
두 사람이 같이 작업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는 것은 아마 나밖에 몰랐을 거야. 가끔 모두가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늦은 저녁에 A 아틀리에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곤 했어. 두런두런 들리던 목소리는 낯선 외국어를 담고 있어 나로서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어. 단지 내가 놀랍게 여기며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열정적으로 입을 열어 말하는 네 옆모습이었어. 일말의 경계도 없는 듯한 검은 눈이 반짝거렸어.
그제서야 나는 내가 품었던 생각의 편린을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어. 본인만의 틀에 파고드는 타입이라고? 오히려 너는 그 반대였던 거야. 세상에 대한 아무런 틀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 그래서 상대방을 전부 다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불현듯 그 동안 네가 말수가 아주 적었던 것 역시 마디 단위의 말 하나하나에도 다 의미를 부여해왔기 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시간 동안 아주 깊이 경청해 왔으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어. 한 학기 내내 네가 겉돈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주변 노이즈를 낮추고 있는 선택을 하고 있단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새로운 형식을 추앙하면서 정작 아예 다른 의미를 좇는 네 미술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교수들과 나는 결국 다를 바 없었다는 깨달음에 얼굴이 뒤늦게 달아올랐어.
나는 지난 11월 리암의 파티에서 조용히 뒤로 물러섰던 것처럼 아틀리에로 들어서는 대신 작업실 문을 닫고 차가운 거리로 나섰어.
겨울이 지나고 새해에 맞이하는 첫 데뷔 룬트강에 네 그림에 변화가 생겼어. 처음으로 인물 비슷한 것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야. 어딘지 초현실적인 공간감이 드는 배경만은 여전했어. 프랙털처럼 번져가는 피타고라스 나무 같은 뿌리들이라든가 이질감이 드는 섬인데도 제비, 비둘기, 참새, 청설모 같은 흔히 도시에서 마주치는 동물들이 중심인 것도 그대로였지. 인물은 아주 작은데다 그림자처럼 윤곽만 있었어. 성별도 나이도 모호했어. 언뜻 노인 같기도 하고, 아주 해맑은 어린 소년처럼도 보여서 난 사실 그게 꼭 너 같다고 생각했어.
양 교수는 드디어 네 그림에 ‘킥’이 생겼다고 말했어. 밋밋한 밥풀 같던 그림에 이제야 구심점이 잡혔다고 말이야. 나도 네 그림이 전보다 더 무게추가 생긴 것 같다는 데에는 동의했어. 유다이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있었을까? 모두가 호기심을 품고 네 그림을 주목하는 와중에 유다이의 룬트강 작품은 또 다시 화제가 됐어.
사진 콜라주 작업을 붙인 대형 알루미늄 패널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레이어를 만들어 덧붙인 설치미술이었어. 유다이는 그 주변을 흰 민들레 씨앗 줄기들로 둘러 쌌어. 정밀하게 조율한 실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이따금 씨앗들이 흩날리며 작품의 양상은 계속 변화했어. 현대인의 분열된 정체성을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외국인이자 체류객으로서의 모습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도 있음을 시사한 작품은 트렌드에 부합했고, 시장성도 있었어. 유다이는 여러 작가 에이전시에서 콜을 받았지. 하지만 내 기우였을까, 아니면 지금에 와서 돌이켜 짜 맞추어 보는 걸까. 그 즈음의 유다이는 평소보다 맥이 빠져 보였어.
현재에 이르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땅히 이렇게 될 만한 일이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잖아. 대개는 그게 사실이 아닌데도 말이야.
유다이의 졸업 전에 이루어진 둘의 콜라보 전시도 꼭 그랬어.
분명 좋은 주제라고 생각해. 방향성에는 아무런 의심이 없어. 그렇게 유다이는 확신했어. 안나는 어떻게 생각해?
두 사람은 우키요에(浮世絵) 판화를 재해석하며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을 특정 성별에 국한된 애정이 아닌 양상으로 바꾸어 묘사할 생각이었어. 평소의 두 사람 다 시도하지 않은 영역이었고, 콜라보 전시로서 해볼 수 있을 만한 작품 유형이었어. 극도의 미를 추구했던 토요쿠니의 스타일이 아닌,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샤라쿠의 스타일을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은 현대적으로 적절해 보였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 너와 유다이 둘 중 그 누구도 차마 짐작하지 못했던 건,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의 고초에 있었어.
시작은 침묵이었어. 늘 쉬지 않고 입을 열던 유다이가 갑자기 조용해져 있었어. 이젤 앞에서 긴 목을 수그린 유다이의 이마가 찌푸려졌어. 네가 재빨리 말했어. 다시 그려 올게요. 유다이는 차마 네 그림에 안 좋은 말을 얹을 수 없는 듯 오랫동안 망설였어. 나 역시 크리틱 시간에 못된 말들을 일삼았던 교수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머뭇거렸어.
죠, 네 평소 스타일 같지가 않아.
내 말에 입이 트인 듯 유다이가 말했어.
왜 잘 보이려는 그림을 그려? 그런 적 없었잖아.
밥풀처럼 흰 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어. 결코 언성을 높인 게 아닌데도, 나 역시 잔뜩 꾸증 받은 심정이 되어 기분이 상했어.
그 후로 나는 아틀리에로 가는 걸 피하게 됐어. 전시가 가까워질수록 유다이는 신경이 과민해졌고,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네 모습을 보는 건 굉장히 거북한 느낌이 들었어. 나는 이리저리 지시만 하는 유다이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제대로 된 항변 하나 하지 못한 채 다시 그려볼게요, 라고 말만 하는 네 성실성에 짜증이 나기도 했어.
상당히 걱정스러웠던 과정에 비해 콜라보 전시는 무사히 막을 올렸어. 난 유다이와 너를 대신하듯 평단과 대중의 반응을 꼼꼼이 살폈는데, 다행히 SNS에서의 반응도 괜찮았고, 전시장을 찾는 방문객도 적지 않았어. 교내 잡지에는 실린 비평 기사는 두 사람의 출신지와 우키요에의 특성을 묘사하며 전시 주제를 부각했지. 그걸 스크랩해놨던 기사를 전해주려고 했었는데, 그 무렵 경황이 없어서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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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겐로쿠 시대의 우키요에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닮게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해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사랑의 아주 깊은 내면에는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상대를 닮고 싶다는 불가능한 열망이 흐르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랑은 정말 제 존재를 던지고 상대방의 자아로 빠져들어가기 위한 과정인가?
코가 유다이와 아사쿠라 죠의 공동전, A World without Love는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해성을 동시에 탐닉한다. 에도 중기 시대의 화가, 샤라쿠의 스타일을 과감히 재해석해 목탄으로 밑바탕을 그리고, 해당 그림을 다시 여러 분할로 나누어 다른 비율로 전시함으로써 두 사람은 사랑의 동시성과 불연속성을 나란히 배치했다. 두 작가가 원본으로 삼은 샤라쿠는 배우들의 얼굴을 너무 닮게 그리려고 해서 오히려 진실에서 먼 모습이 되었다는 비평과 약동감 넘치는 사실적인 그림이라는 평을 동시에 들었던 작가다. 흰 형광 조명 아래에서 하나로 보이다가 점점 거울처럼 번져나가는 표상은 사랑의 진실이라는 것은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 같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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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자주 사용하는 피타고라스 나무 같은 프랙탈의 이미지, 그리고 유다이가 활용하는 불연속적인 이미지가 모두 잘 드러난 전시였어. 난 두 사람이 전시 준비하는 과정을 보는 건 괴로웠지만 L갤러리에서 막상 핵심이 되는 작품을 맞닥트렸을 때는 내가 봐온 잡음을 다 잊어버릴 정도로 빠져들었어.
글쎄, 해체되고 분할되긴 했어도 원본인 네 그림은 그저 에로틱했어. 여러 수정을 거쳤기 때문이겠지만 그 그림에서 유다이가 말한 ‘잘 보이려고 하는 듯한’ 구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어. 다만 작품의 주제가 너무나 두 사람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경유하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협업 전시로 막을 내렸다는 걸 전해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말이야.
함부르크의 작가 에이전시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유다이가 말했어. 아틀리에에서 이삿짐을 싸면서 마치 다음주 날씨 얘기라도 하듯이. 졸업 전이지만 다음 달부터 거기서 일하게 됐다고.
그때 마침 너는 자리에 없었어. 내가 네 이젤 쪽에 힐긋 시선을 주었을 때 유다이는 그 동안 고마웠고, 죠를 잘 부탁한다고 했어. 그 진부한 형식의 인사에 아마 난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을 거야. 내 표정을 본 유다이가 엄청난 얼굴이라며 웃고 말았으니까.
작별 인사는 나눴어?
내 질문에 유다이는 고개를 흔들었어.
아무래도 죠가 내게서 영향을 받으니까. 지금의 관계는 죠의 작업에 이롭지 못해.
너는 짤막하게 말했고,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었어.
네게도 그렇지.
내 말에 유다이는 소리 내어 대답하지 않았지만 꽉 깨문 입술의 핏기가 사라져 가는 것이 선명했어.
너는 놀랍게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어. 전부 다 예상한 사람처럼 네 빈 자리를 받아들였고, 아틀리에 청소를 조용히 도왔어. 너는 다시 전처럼 아주 말수가 적어져 있었어.
몇 주 후 우리 작업실은 다른 반으로 갈리게 됐어. 너와 나는 종종 캠퍼스에서 마주쳤지만 이제 이전처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어. 가끔 보는 네 얼굴은 쓸쓸하고 적막해 보였는데, 내 기분 탓이었을지도 몰라. 학과 행사나 파티에서 네 모습을 보곤 했어. 너는 여전히 말하기보다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네가 유창하게 독일어와 영어를 쓴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나는 유다이가 함부르크로 떠난 후 6개월 뒤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작가 에이전시에서 활동하게 됐고, 그 후에 너와도 연락이 끊겼어.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네 이름을 봤어. 이제 U 대학교를 졸업하는 신진 작가로서 네 약력과 이번 작품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었어. 보자마자 어찌나 가슴이 뛰었는지! 도록의 설명을 열 번은 읽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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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풍경과 동물, 정물을 흑백 세계에서 묘사해 온 아사쿠라 죠의 이번 신작은 그가 처음으로 정면으로 선보이는 인물화이다. 어떤 것도 미화하지 않고 자기를 명확하게 인식하고자 하는 열정이 터치감에 돋보인다. 한편, 추억에 잠긴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듯 아련하고 희미하게도 보인다. 그럼에도 줄곧 좇아온 인물의 형상을 놓치지 않을 것임을 당부하듯이 단단한 선들은 밀도감 있게 인물을 둘러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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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논평을 쓴 큐레이터는 함부르크에서 작가를 겸하는 일본인이라고 했어. Y. K. 익숙한 서명을 보는 순간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어. 도록에 실린 그림들은 언뜻 너 같기도 하고 유다이 같기도 했어.
*룬트강: 독일 미술대학에서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전시. 일반인에게도 폭넓게 개방된다